제2장
서미희가 나타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쏟아지는 시선에도 서미희는 무표정했다.
서미희는 평범한 반소매 티셔츠 차림이었지만 머리에는 정교한 황금 봉황관을 쓰고, 목에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손목에는 옥팔찌와 황금 팔찌를, 손가락에는 커다란 핑크 다이아 반지를 끼고 있었다.
이내 사방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미희 진짜 촌스럽다. 장신구란 장신구는 다 꺼내 걸쳤네. 졸부 같아.”
“내 생각엔 서미희가 일부러 저런 비싼 것만 골라서 차고 나온 거야. 과시하면서 김서아 망신 주려고.”
…
서미희는 거침없이 김서아 앞으로 걸어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축하해. 드디어 오늘 서씨 집안의 일원이 되었네.”
지난 생에 김서아가 서씨 집안의 일원이 된 후, 그녀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아무리 비위를 맞추고, 아무리 살갑게 굴며 말을 잘 들어도.
오빠들은 하나같이 김서아의 편만 들었다. 둘째 오빠 남윤은 차라리 김서아가 서씨 집안의 친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번 생에는 이따위 같잖은 가족애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김서아는 서미희의 몸에 걸쳐진 값비싼 물건들을 보고 속으로 심한 질투를 느꼈지만, 얼굴에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김서아는 먼저 목을 움츠리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미희 언니, 언니가 기분 안 좋은 거 알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전 언니한테서 오빠들을 뺏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전 영원히 남일 뿐이고, 언니야말로 오빠들의 친동생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언니를 이기겠어요?”
김서아는 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미희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가련한 척하는 백련꽃이 따로 없군.
지난 생에 그녀는 김서아의 저 순진무구한 태도에 속아 처참한 꼴을 당했다. 죽기 직전에야 저 여자의 본모습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본 서북현이 황급히 나섰다. “서아야, 울지 마. 누가 너보고 남이래? 오늘부터 넌 나 서북현의 친동생이야.”
김서아는 눈꺼풀을 내려 스쳐 지나가는得意한 기색을 감췄다.
서남윤이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서아야, 이건 널 위한 선물이야.”
김서아는 감격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둘째 오빠, 이거 미희 언니한테 줄 선물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받아요!”
서미희는 상자 안의 한정판 피규어를 보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지난 생에도 남윤 오빠는 ‘친절하게도’ 자기를 대신해, 자기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피규어를 김서아에게 사죄의 의미로 줬으니까.
서남윤이 말했다. “가져. 미희가 너한테 빚진 거니까.”
서북현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서미희, 서아가 방금 네가 밀어서 물에 빠뜨린 일로 널 탓하지 않고, 남윤 오빠도 널 대신해서 선물을 줬는데, 네 성의는 어디 있어?”
서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일부러 사죄 선물도 챙겨 왔지.”
그녀는 몸에 걸친 장신구들을 전부 벗어 하나씩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동하 오빠가 준 골동품 봉황관.”
“이건 남윤 오빠가 준 에메랄드 옥 펜던트.”
“이건 시우 오빠가 준 백 년 묵은 산삼.”
“이건 북현 오빠가 준 희귀 핑크 다이아 반지.”
“이건 우현 오빠가 준 비취 팔찌.”
“이건 유민 오빠가 준 금 트로피.”
서미희는 하나씩 접시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나한테 아주 소중한 물건들이야. 사죄 선물로는 성의가 충분하겠지.”
그녀는 북현 오빠가 사죄에 대해 따져 물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것들을 정리해 둔 것이었다.
김서아가 서씨 집안에 들어온 이후로 오빠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변변한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이것들이 값나가는 전부였다.
어차피 결국엔 이 물건들도 오빠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김서아에게 주라고 다시 가져갈 테니까.
서북현은 접시 위의 물건들을 보고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이건 전부 서미희가 예전에 가장 아끼던 물건들이었다!
어떻게 감히?
서남윤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미희야, 이게 무슨 뜻이야?”
“남윤 오빠, 말했잖아. 내 사죄의 성의라고. 북현 오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서미희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고, 감정의 동요조차 없었다.
김서아는 상자 안의 물건들을 보고는 의아해하며 서미희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후퇴를 가장한 전진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김서아가 바로 입을 열었다. “미희 언니, 이건 다 오빠들이 언니한테 준 선물이잖아요. 너무 귀한 것들이라 제가 받을 수 없어요.”
서북현이 버럭 소리쳤다. “맞아, 이건 우리가 너한테 준 선물인데, 어떻게 그걸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가 있어?”
김서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살짝 굳더니,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맞아요, 미희 언니. 전 그냥 남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겠어요?”
서북현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고 즉시 해명했다. “서아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네 선물은 내가 다시 골라줄게. 어떻게 남이 받았던 선물을 주겠어?”
김서아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북현 오빠.”
서북현의 마음이 순간 말랑해졌다. 그래, 이게 바로 착한 여동생의 모습이지.
서남윤이 다소 난감해하며 말했다. “미희야, 또 무슨 심술이야?”
이 선물들은 서미희가 줄곧 보물처럼 아끼며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걸 전부 꺼내 김서아에게 사죄 선물로 주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우리와 관계를 끊고 싶다는 뜻인가?
아니면 내가 멋대로 자기 피규어를 가져가 김서아에게 사죄 선물로 줘서 토라진 건가?
서남윤은 서미희가 절대 진심으로 이걸 주려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남윤 오빠, 쟤는 그냥 이런 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거잖아. 우리가 모를 줄 아나 봐? 서미희, 넌 도대체 언제쯤 서아처럼 철 좀 들래?”
서미희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 선물들 값어치만 수십억 원이야. 사죄의 성의로, 충분한지 아닌지만 묻는 거야. 북현 오빠, 설마 아까운 건 아니지?”
서북현은 말문이 막혔다. 이게 같은 문제인가?
김서아 앞에서 그는 우물쭈물했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그럼 다들 증인이야. 이 선물들은 보상으로 주는 걸로.”
서남윤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미희야, 그만 좀 해.”
어떻게 이렇게 소중한 선물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단 말인가?
설령 북현 오빠에게 토라졌다고 해도, 자기들이 준 선물까지 함께 넘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윤 오빠,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여?”
서미희는 접시를 김서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제 이거 다 네 거야.”
서씨 집안의 여섯 오빠들을 포함해서, 그녀는 모두 버릴 작정이었다.
김서아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졌다. 어쩐지 서남윤과 서북현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김서아는 상자를 든 채 손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서미희가 이런 것들을 사죄 선물로 내놓을 줄은 상상도 못 해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걸 잘 처리하지 못하면 분명 서씨 집안 형제들의 반감을 살 것이다.
서미희가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워졌지!
서미희는 김서아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서미희, 너 거기 안 서!”
서북현은 몹시 화가 났다. 서미희가 자기가 준 물건으로 사죄를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사과 방식인가?
하지만 서미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서남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희가 요즘 점점 더 제멋대로 구는군!”
서남윤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그가 선물한 옥 펜던트는 그가 처음으로 번 돈으로 산 것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서북현은 마치 허공에 주먹질을 한 듯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일부러 저러는 거야, 우리 화나게 하려고.”
김서아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역시 서미희의 이 후퇴를 가장한 전진이 효과가 있었다. 그 여자가 뜻대로 하게 둘 순 없었다.
김서아는 상자를 품에 안고 힘없이 말했다. “남윤 오빠, 북현 오빠. 제가 또 뭘 잘못한 걸까요? 제가 어떻게 미희 언니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받겠어요! 저 이제 어떡해요!”
망할 서미희가 자신에게 함정을 파놓다니!
서북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걔가 사죄 선물로 준 거니까 그냥 받아! 내가 보기엔 사흘도 안 돼서 후회할걸.”
흥, 그는 서미희가 후회하는 꼴을 똑똑히 지켜볼 작정이었다. 그때가 되면 서미희를 된통 비웃어 줄 테다.
서남윤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하자, 서아야. 상자는 네가 일단 미희 대신 보관하고 있어. 걔 화가 풀리면 괜찮아질 거야.”
예전에도 서미희가 심술을 부린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엔 다 괜찮아졌었다.
그는 서미희가 정말로 이 선물들을 포기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네, 제가 꼭 잘 보관할게요.”
김서아는 부드럽고 순종적인 미소를 지었다.
서남윤은 한숨을 쉬었다. 예전의 서미희도 저렇게 착하고 말을 잘 들었던 것 같은데, 어서 빨리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는 옆에서 얌전히 있는 김서아를 보고 다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서아는 저렇지 않아서.
—
서미희는 혼자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물에 빠진 후유증인지 몸에 한기가 들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눕자마자 눈을 감았다.
어떻게 서씨 집안을 떠나 돈을 벌어 독립할지 생각해 봐야 했다!
지난 생에 수능이 끝난 후, 그녀의 성적은 분명 명문대에 갈 수 있었지만 북현 오빠의 한마디 때문에 김서아가 다니는 지방 사립대에 지원했다.
학교에서는 김서아의 엄마 노릇을 했고, 잘못은 모두 그녀가 뒤집어썼다.
말을 듣지 않으면 신용카드가 정지되었고, 재벌가 아가씨이면서도 빈곤 학생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결국 김서아는 그녀가 힘들게 완성한 논문 결과물까지 훔쳐갔고, 그녀는 표절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징계를 받아 퇴학당했다.
이번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명문대에 갈 것이다!
학비와 생활비는 프로 게임팀 대회에 참가해서 상금을 타면 된다.
지난 생의 게임 실력이라면, 이쪽 일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연회가 끝난 후, 서남윤이 2층 침실 밖으로 찾아왔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문도 안에서 잠겨 있었다.
“남윤 오빠, 서아가 열나는 것 같아요. 빨리 와서 좀 봐주세요.”
